옛글

나를 지켜라

몽블랑* 2013. 10. 1. 13:16


나를 지켜라 

무릇 천하의 사물은 모두 지킬 것이 없다. 오직 나만은 마땅히 지켜야 한다. 내 밭을 등에 지고 달아날 자가 있는가? 밭은 지킬 것이 없다. 내 집을 머리에 이고 도망갈 자가 있는가? 집은 지킬 필요가 없다. 내 동산의 꽃나무와 과일나무를 능히 뽑아가겠는가? 그 뿌리가 땅에 깊이 박혀 있다. 내 서적을 가져다 없앨 수 있겠는가? 성현의 경전이 세상에 물과 불처럼 널려 있으니 누가 능히 이를 없애랴. 내 옷과 양식을 훔쳐가서 나를 군색하게 할 수 있겠는가? 이제 천하의 실이 모두 내 옷이요, 천하의 곡식이 모두 내 밥이다. 저가 비록 한둘쯤 훔쳐간대도 천하를 통틀어 다 가져갈 수야 있겠는가? 결국 천하의 사물은 모두 지킬 것이 없다.

오직 이른바 '나'라는 것은 그 성질이 달아나기를 잘하고, 들고 나는 것이 일정치가 않다. 비록 가까이에 꼭 붙어 있어서 마치 서로 등지지 못할 것 같지만. 잠깐만 살피지 않으면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 이록(利祿)으로 꼬이면 가버리고, 위협과 재앙으로 으르면 가버린다. 구슬프고 고운 소리를 들으면 떠나가고, 푸른 눈썹 흰 이의 요염한 여인을 보면 떠나 간다. 한번 가기만 하면 돌아올 줄 모르고, 붙들어도 끌고 올 수가 없다. 그래서 천하에 잃기 쉬운 것에 '나'만한 것이 없다.

마땅히 꽁꽁 묶고 잡아매고 문 잠그고 자물쇠로 채워서 굳게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다산어록 淸賞중 수오제기(守吾齊記)

大凡天下之物 皆不足守 而唯吾之宜守也 (대범천하지물 개부족수 이유오지의수야) 有能負吾田而逃者乎? 田不足守也 (유능부오전이도자호? 전부족수야) 有能戴吾宅而走者乎? 宅不足守也 (유능대오택이주자호? 택부족수야) 有能拔吾之園林花果諸木乎? 其根著地深矣 (유능발오지원림화과제목호? 기근저지심의) 有能攘吾之書籍而滅之乎? (유능양오지서적이멸지호?) 聖經賢傳之布于世 如水火然 孰能滅之 (성경현전지포우세 여수화연 숙능멸지) 有能竊吾之衣與吾之糧而使吾窘乎? (유능절오지의여오지양이사오군호?) 今夫天下之絲 皆吾衣也, 天下之栗 皆吾食也 (금부천하지사 개오의야, 천하지율 개오식야) 彼雖竊其一二 能兼天下而竭之乎? (피수절기일이 능겸천하이갈지호?) 則凡天下之物 皆不足守也 (칙범천하지물 개부족수야) 獨所謂吾者 其性善走 出入無常 (독소위오자 기성선주 출입무상) 雖密切親附 若不能相背 而須臾不察, (수밀절친부 약불능상배 이수유불찰,) 無所不適 利祿誘之則往 威禍怵之則往 (무소부적 이록유지칙왕 위화출지칙왕) 聽流商刻羽靡曼之聲則往 見靑蛾皓齒妖艶之色則往 (청류상각우미만지성칙왕 견청아호치요염지색칙왕) 往則不知反 執之不能挽 故天下之易失者 莫如吾也 (왕칙부지반 집지불능만 고찬하지역실자 막여오야) 顧不當縶之維之扃之鐍之 以固守之邪? (고불당집지유지경지휼지 이고수지사?)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드는 것은 집과 땅 같은 것들이다. 지켜야 할 나는 내버려둔채, 달아날 염려가 없는 물건만 지키려고 난리다. 내가 나를 잃으면 그 많은 물건을 다 지녀도 내 것이 아니다. 한번 떠난 나는 돌아올줄 모르고, 주인 잃은 빈집에 허깨비만 산다. 이익과 명예, 부귀와 여색에 빠져 떠나버린 나를 어디서 찾아 데려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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