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칭삼한(只稱三閒) 최규서(崔奎瑞)가 전라감사로 있을 때 일이다. 호남에서 막 올라온 사람이 있었다. 영의정 최석정(崔錫鼎)이 그를 불러 물었다. "그래 전라감사가 백성을 어찌 다스리던가?" 그 사람이 대답했다. "별일이 없던 걸요. 하지만 남쪽 백성들이 다만 세 가지가 한가로워졌다고들 합니다(只稱曰.. 세설신어 2013.10.28
교자이의(敎子以義) 호조판서 김좌명(金佐明)이 하인 최술(崔戌)을 서리로 임명해 중요한 자리를 맡겼다. 얼마 후 과부인 어머니가 찾아와 그 직책을 떨궈 다른 자리로 옮겨달라고 청했다. 이유를 묻자 어머니가 대답했다. "가난해 끼니를 잇지 못하다가 대감의 은덕으로 밥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중.. 세설신어 2013.10.01
이명비한(耳鳴鼻鼾) 귀에 물이 들어간 아이에게 이명(耳鳴) 현상이 생겼다. 귀에서 자꾸 피리 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신기해서 제 동무더러 귀를 맞대고 그 소리를 들어보라고 한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고 하자, 아이는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시골 주막에는 한 방에 여럿이 함께 자는 수.. 세설신어 2013.10.01
임거사결(林居四訣) 정조 때 좌의정을 지냈던 유언호(兪彦鎬·1730~1796)는 기복이 많은 삶을 살았다. 잘나가다 40대에 흑산도로 유배 갔고, 복귀해서 도승지와 대사헌을 지낸 후에 또 제주도로 유배 갔다. 벼슬길의 잦은 부침은 진작부터 그로 하여금 전원의 삶을 꿈꾸게 했다. 한번은 그가 지방에 있다가 임금.. 세설신어 2013.10.01
敎婦初來 마삭줄/대아수목원(2011/02/05) 교부초래(敎婦初來) "남자는 가르치지 않으면 내 집을 망치고, 여자는 가르치지 않으면 남의 집을 망친다. 그러므로 미리 가르치지 않는 것은 부모의 죄다. 당장에 편한 대로 은애(恩愛)하다가 무궁한 근심과 해악을 남긴다." /李德懋의 士小節 이런 말도 보인.. 세설신어 2013.10.01
심한신왕(心閒神旺) 청말의 전각가 등석여(鄧石如)의 인보(印譜)를 들춰보는데 '심한신왕(心閒神旺)'이란 네 글자를 새긴 것이 보인다. 마음이 한가하니 정신의 활동이 오히려 왕성해진다는 말이다. 묘한 맛이 있다. 내가 "천자문"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네 구절은 이렇다. "성품이 고요하면 정서가 편안하고, .. 세설신어 2013.10.01
끽휴시복 (喫虧是福) 정승 조현명(趙顯命·1690~1752)의 아내가 세상을 떴다. 영문(營門)과 외방에서 부의가 답지했다. 장례가 끝난 후 집사가 물었다. "부의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돈으로 바꿔 땅을 사 두시지요." "큰아이는 뭐라던가?" "맏상주께서도 그게 좋겠다고 하십니다." 조현명이 술을 취하도록 마시고 여.. 세설신어 2013.10.01
수오탄비 (羞惡歎悲) 어떤 사람이 강백년(姜栢年)에게 제 빈한한 처지를 투덜댔다. "자네! 춥거든 추운 겨울 밤 순찰 도는 야경꾼을 생각하게. 춥지 않게 될 걸세. 배가 고픈가? 길가에서 밥을 구걸하는 아이를 떠올리게.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네." 옛말에도 "뜻 같지 않은 일을 만나거든 그보다 더 심한 일에 .. 세설신어 2013.10.01
양묘회신(良苗懷新) 양묘회신(良苗懷新) 도연명의 '계묘년 초봄 옛 집을 그리며(癸卯歲始春懷古田舍)'란 시는 이렇다. "스승께서 가르침 남기셨으니, 도를 근심할 뿐 가난은 근심 말라 하셨네. 우러러도 아마득해 못 미치지만, 뜻만은 늘 부지런히 하려 한다네. 쟁기 잡고 시절 일을 즐거워하며, 환한 낯으로 .. 세설신어 2013.10.01
수정장점(隨定粧點) 수정장점(隨定粧點) 원균이 살았더라면 할 말이 아주 많았을 것 같다. 드라마든 영화든 그는 늘 술주정뱅이에 폭력적 상관으로 나온다. 이순신을 덮어놓고 괴롭히는 악역이다. 백전백승의 무적 수군을 회복불능의 상태로 몰아넣은 원흉도 그다. 그렇게 못됐고 무능력하며 권위만 내세우.. 세설신어 2013.10.01
취문성뢰(聚蚊成雷) 형제는 이름난 벼슬아치였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남의 벼슬길을 막는 문제를 두고 논의했다. 곁에서 말없이 듣던 어머니가 연유를 물었다. "그 선대에 과부가 있었는데 바깥 말이 많았습니다." "규방의 일을 어찌 알았느냐?" "풍문이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정색을 했다. "바람은 소리만 .. 세설신어 2013.10.01
쟁신칠인(諍臣七人) 증자가 공자에게 물었다. "아버지 말씀을 잘 따르면 효자라 할 수 있을까요?" 공자의 대답은 뜻밖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 옛날에 천자는 바른말로 간쟁(諫諍)하는 신하가 일곱 명만 있으면 아무리 무도해도 천하를 잃지 않고, 제후는 다섯 명만 있어도 그 나라를 잃지 않는다고 했다. 대.. 세설신어 2013.10.01
습정투한(習靜偸閑) 하는 일 없이 마음만 부산하다. 정신없이 바쁜데 한 일은 없다. 울리지 않는 휴대폰의 벨소리가 귀에 자꾸 들린다. 갑자기 일이 생기면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다. 혼자 있는 시간은 왠지 불안하다. 너나 할 것 없이 정신 사납다. 고요히 자신과 맞대면하는 시간을 가져본 것이 언제인가? "세.. 세설신어 2013.10.01
용종가소(龍鍾可笑) > '삼국사기' 온달 열전은 이렇게 시작된다.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 때 사람이다. 용모가 꾀죄죄하여 웃을 만했지만(龍鍾可笑), 속마음은 맑았다. 집이 몹시 가난해서 늘 먹을 것을 구걸해 어미를 봉양했다. 찢어진 옷과 해진 신발로 저자 사이를 왕래하니, 당시 사람들이 이를 가리켜 바보 .. 세설신어 2013.10.01
즐풍목우(櫛風沐雨) 즐풍목우(櫛風沐雨)/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우임금이 치수할 때, 강물과 하천을 소통시키느라 손수 삼태기를 들고 삽을 잡았다. 일신의 안위를 잊고 천하를 위해 온몸을 바쳐 노고했다. 그 결과 장딴지에 살점이 안 보이고, 정강이에 털이 다 빠졌다. 바람으로 머리 빗고, 빗물로 목.. 세설신어 2013.10.01
함장축언(含章蓄言) 다산이 초의(草衣) 스님에게 준 친필 증언첩(贈言帖)에 이런 내용이 있다. 주역'에서는 '아름다움을 간직해야 곧을 수가 있으니 때가 되어 이를 편다(含章可貞, 以時發也)고 했다. 내가 꽃을 기르는데, 매번 꽃봉오리가 처음 맺힌 것을 보면 머금고 온축하여 몹시 비밀스럽게 단단히 봉하.. 세설신어 2013.10.01
호추불두(戶樞不蠹) 상용(商容)은 노자(老子)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세상을 뜨려 하자 노자가 마지막으로 가르침을 청했다. 상용이 입을 벌리며 말했다. "혀가 있느냐?" "네 있습니다." "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알겠느냐?" 노자가 대답했다. "강한 것은 없어지고 부드러운 것은 남는다는 말씀이.. 세설신어 2013.10.01
기리단금(其利斷金) 기리단금(其利斷金) 다산은 유배지 강진에서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 원포(園圃)의 경영을 당부했다. 특별히 마늘과 파를 가장 역점을 두어 심게 했다. 아들은 그 말씀에 따라 마늘을 심고, '종산사(種蒜詞)', 즉 '마늘 심는 노래'를 지어 아버지께 보고했다. 또 밭에서 거둔 마늘을 내다 팔아.. 세설신어 2013.10.01
남산현표(南山玄豹) 남산현표(南山玄豹) 윤증(尹拯·1629~1714)이 게으른 선비에게 준 시에 이런 것이 있다. "열심히 공부하려면 조용해야 하는 법, 남산의 안개 속 표범 보면 알 수 있네. 그대 집엔 천 권의 서적이 있건만, 어이해 상머리서 바둑이나 두는겐가 (多少工夫靜裏宜, 南山霧豹可能知. 君家自有書千卷.. 세설신어 2013.10.01
담박영정(淡泊寧靜) 언어의 소음에 치여 하루가 떠내려간다. 머금는 것 없이 토해내기 바쁘다. 쉴 새 없이 떠든다. 무책임한 언어가 난무한다. 허망한 사람들은 뜬금없는 소리에 그만 솔깃해져서 그러면 그렇지 한다. 풍문이 진실로 각인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 곁에서 회심의 미소를 흘리며 이익을 챙긴다.. 세설신어 2013.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