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아비 그리운때 보아라

몽블랑* 2013. 10. 1. 13:05

병오년 2월에 여아 조실이 제아우 혼인때 근행(覲行)하여 임경업전을 등출(騰出)차로 시작하였다가 필서(畢書) 못하고 시댁으로 가기에 제아우시켜 필서하며 제 종남매 제 숙질 글씨 간간이 쓰고 노부(老父)도 아픈 중 간신히 서너장 등서(騰書)하였으니 아비 그리운때 보아라

옛글에 얽힌 선인들의 삶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인쇄술이 변변찮던 시절, 어렵사리 친정에 온 딸을 위해 온 가족이 모여 소설책을 베껴주었단다. 사촌동생, 조카가 매달렸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자 아버지까지 나선다. 그렇게 만들어진 필사본 남은 여백에 아버지는 사연을 단다.

"아비 그리운때 보아라" 마냥 무뚝뚝해 보였던 사대부의 딸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잔잔하게 느껴진다.

뒤늦게 친정에서 보내온 이 책을 받아든 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때 소설은 그저 단순한 이야기책일 수가 없다. 그리운 아버지, 보고 싶은 어머니, 동생과 친정식구들 생각이 날때마다 그녀는 이 책을 읽고 또 읽었을 것이다. 필사기가 적힌 마지막 장에는 그녀의 눈물 자국이 여기저기 남아 있을 것만 같다. 부모의 이런 마음이 딸에게는 그 힘든 시집살이를 견뎌낼 수 있도록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해주었을 것이다. 붓으로 베껴 쓴 옛 소설책을 보면 떠오르는 생각이 참 많다. /정민의 책읽는 소리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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