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한 통을 오동나무 그늘에 놓아두고
아침저녁으로 가서 살펴보니
법도가 몹시 엄격합디다.
나라꼴이 벌만도 못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풀이 꺾이게 하는구려.
蜂一桶置于梧陰 觀朝夕衛 法度甚嚴
國而不及蜂 令人短氣
/許筠(1569-1618)의 復南宮生
함열 땅에 유배되어 가 있을때 쓴 편지다.
속도 상하고 무료하기도 했겠지.
오동나무 그늘 아래서는 하루종일 꿀벌이 잉잉거립니다.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잠시도 쉴새없이 들락거립니다.
뜨락에 벌통 하나 들여다놓고 아침에도 살펴보고
저녁에도 살펴보곤 하지요.
처음엔 제멋대로 나고 드는 줄 알았지요.
가만 보니 그런 것이 아닙디다.
차례는 어찌 그리 정연하고 질서는 얼마나 짜여 있던지요
하나의 흐트러짐 없이 계획에 따라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더군요
위계도 정연하구요.
자꾸 제 눈길이 그리로 갔던 것은 아마도 한심한 나라꼴 때문이었지 싶습니다.
도무지 손발이 안맞고 자기들끼리 치고 받고 싸우느라 혈안이 되어 있는
민생은 언제나 뒷전이고 달콤한 꿀만 보면 앞뒤 가리지 않고
파리떼처럼 달려드는 나라꼴 말씀입니다.
그 생각만 하면 입맛이 떨어지고 한마디로 김이 팍 샙니다.
/鄭珉의 죽비소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