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비소리

報告

몽블랑* 2013. 10. 1. 07:06

조정에서  
이정암公이 왜적에게 포위당했다는 말을 듣고 상하가 모두 위태로움을 근심하였다.

이겼다는 보고가 도착했는데 단지, "적이 아무 날에 성을 포위한 것을 풀고 물러갔나이다."라고만 했지 일체의 장황한 말이 없었다. 적을 물리치기는 쉽다. 공을 자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

朝廷聞公被圍 上下憂危 及捷至 只言賊以某日圍城解去 一無張皇語 議者言 : 却賊易 不伐功尤難 /金堉(1580-1658)의 海東名臣錄

임진왜란 때 일이다. 이정암이 황해도 연안을 지나다가 왜적을 맞아 싸우게 되었다. 성안에는 5백의 군사가 있었고, 해주를 함락한 후 승승장구 쳐들어온 왜병은 3천이 넘었다. 그는 섶을 쌓고 그 위에 앉아 지휘했다. 성이 함락되면 스스로 불을 질러 타죽겠다고 했다. 합심하여 나흘간을 죽기 살기로 싸웠다. 죽고 부상한 왜병이 반이 넘었다. 마침내 연안성을 포기하고 포위를 풀고 떠났다. 이 연안성 전투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거둔 몇 안되는 승리 가운데 하나다. 마침내 그의 보고서가 조정에 도착했다. "신은 삼가 아룁니다. 적이 아무 날에 성을 포위하였다가, 아무 날에 포위를 풀고 떠나갔나이다." 단 한 줄뿐이었다.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서 벌어진 전투였는지 세운 전과가 얼마나 엄청났는지 적에게 입힌 타격이 얼마나 컸는지는 입도 떼지 않았다. 이 융통성 없고 우직하기 짝이 없는 승전 보고서 때문에 나는 자꾸 그에게 관심이 간다. /鄭珉의 죽비소리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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