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경북 영천)편대장영화식당의 육회

몽블랑* 2009. 3. 14. 11:39

육회...경북 영천 편대장영화식당

경상북도는 전국 한우 생산량의 24%를 차지할 만큼 소를 많이 키우는 지역이다. 덕분에 유통과정 생략에 따라 서울의 1/3 가격에 최상급 한우를 맛볼 수 있는 '한우별미 특구'와 다름없는 곳이다.

특히 경주-안동-영주-상주-군위 등 유명 한우산지에는 그 맛집들이 즐비한데, 그중 경북 내륙의 아담한 도시 영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한우 별미촌이다. 싱싱한 함박살을 갖은 양념과 함께 무쳐낸 육회가 대표 메뉴로, 생선보다 더 부드럽고 고소한 육회 맛이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 편대장영화식당의 장옥주 할머니는 지금도 모든 식재료를 직접 챙기고 있다.

흔히 터미널, 역 주변엔 맛있는 집들이 드물다고들 불만이다. 아니 별 기대도 갖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뜨내기손님에 출발시간 마저 촉박한 객들을 맞는 곳이라 치부하자면 굳이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여행객 입장에서는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이처럼 해묵은 고정관념을 깰만한 맛집이 있다. 경북 영천시 시외버스터미널 옆에 자리한 '편대장영화식당'이 바로 그곳이다. 무슨 어린이 만화영화 제목처럼 상호가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음식 맛 하나 만큼은 끝내준다'는 게 단골들의 설명이다.

46년 손맛을 잇고 있다는 이 집의 주 메뉴는 '소고기 육회'. 고소하면서도 달착지근한 게 몇 번 우물 거리다보면 이내 입안에서 사라질 만큼 부드럽다. 반 백년을 소고기 육회만 주물러 왔다는 이 집의 '음식 감독관' 장옥주(73) 할머니의 손끝에서 영천의 대표 메뉴가 탄생한 셈이다.

장씨 할머니는 60년대 초반 영천 시골서(화북면 자천리) '영화식당'을 내고 고깃집을 시작했다. 그때는 돼지고기도 함께 구웠다. 이후 자신감을 얻어 1968년 영천 읍내 성내동 옛 터미널 옆으로 진출했고, 1973년 버스터미널 이전과 함께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았다.

터미널 옆에서는 식육점이 주업이었다. 오랜 세월 고기를 만져 오다보니 고기 고르는 데에는 도가 텄다. 식당을 차려서도 고기 맛 좋기로 소문이 났다. 소금구이, 갈비살로는 영천에서 따라 올 집이 없었다. 이후 25년 전부터 육회도 메뉴에 슬쩍 올렸는데, 그만 대박이 났다.

"신기하지예. 가끔 손님들 주문에 따라 해드렸든 긴데, 그렇게들 좋아하시더락꼬예. 그때부터는 완전히 주객이 전도 됐십미더." 장씨 할머니는 육회 감으로 소 엉덩이살(함박살)을 쓴다. 기름기가 적기 때문이다. 함박살은 소 한 마리를 잡아야 15kg 남짓이 나오는 특수부위이지만 슬슬 녹는 듯한 특유의 육질을 담아내기 위해 이것만을 고집한다. 고기는 영천 도축장에서 들여오는데, 경북 영천, 안동, 상주 등에서 키운 12~25개월 사이 황소만을 고른다.

▲ 장옥주 할머니는 수십년 동안 손끝 하나로 한우 함박살을 주무르고 무치며 영천의 대표 미식거리 '육회'를 선보였다.

"암소는 기름기가 너무 많고, 그렇다고 거세우는 맛이 나지 않아 육회 감으로 쓰지 않습미더. 이래 안 하믄 맛을 낼 수가 없거등예."

수십 년 동안 만인들이 즐겨 찾아 온 영천소고기육회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재밌는 것은 장씨 할머니는 정작 고기를 거의 못 먹는 채식주의자에 가깝다는 것이다. 때문에 육회를 무쳐도 좀처럼 간을 보지 않는다. 하지만 초창기 익힌 손대중 눈대중으로 수십 년 동안 양념을 섞고, 무치고 주물러 최고의 별미를 내놓는다.

영화식당을 찾은 객들은 한결같이 "이 집 것 맛을 보고 나면 다른 고기는 못먹는다"고들 입을 모은다. 부드러운 육질 때문이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숙성과 정성에 있다. 갓도축한 생고기로 육회를 하면 쉽게 물린다. 따라서 반드시 하루 정도를 숙성시켜 부드러워진 살코기만을 쓴다. 특히 일일이 수작업으로 고기에 붙은 기름기를 제거하기 때문에 질기게 씹히는 느낌이 없다.

육회용으로 잘게 썰은 고기에 맛을 내는 양념은 의외로 간단했다. 미나리, 파, 마늘과 간장, 참기름, 설탕, 후추가 전부다. 화학조미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양푼에 고기를 한움큼 넣고 야채와 장류를 넣어 몇번 조물락 거리더니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소고기 육회가 뚝딱 만들어졌다.

"내가 먹어 봐도 참 맛있습미더"라며 빙그레 웃음 짓는 할머니의 조리 과정은 퍽이나 단순 하고도 수월해보였다.

하지만 "한번 맛보시라"며 건넨 육회의 맛은 고소하면서도 달착지근한 게 그만 입안에서 슬슬 녹는 듯했다.

"양념 배합이 중요합미더. 뻔한 것들을 쓰는 것 같지만 섞는 양이 중요하거든예. 특히 참기름은 매일 새로 짜서 쓰고 있습미더."

흔히들 육회에는 배를 갈거나 채를 썰어 사용한다. 또 날계란 노른자를 고명으로 얹기도 한다. 하지만 이 집은 두 가지 모두를 생략한다. 배를 갈아 넣으면 물이 생겨 양념 맛이 달아나기 때문이다. 계란 역시 생고기 특유의 맛을 빼앗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

"술 한잔 놓고 이약도 하꼬 하믄 배에서 물이 나서 금세 흐물거려 못먹십미더. 계란도 마찬가지지예. 육회 맛 볼라꼬 왔제 어데 날계란 무침 먹으로 왔답미꺼."

이 집의 '소고기찌개'도 맛있기로 소문난 메뉴다. 창업 당시부터 46년 동안 끓여 온 국물 맛이다. 고기를 국거리 크기로 잘게 썰어 넣고 파, 고추-마늘 다짐, 고춧가루, 간장 등을 넣고 끓여낸 게 감칠맛 있다. 흔한 육수도 없이 맹물에 끓여 내는데, 집에서 직접 담근 간장이 깊은 맛을 낸다. 육질도 부드럽다. 양지살 대신 등심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고래고기 전골과 그 맛이 흡사하다.

이밖에도 육회만 맛보기에는 아쉽거나 초장부터 육회에 손을 못대는 젊은 여성들이 주물럭을 찾는다. 특히 통 멸치를 넣어 끓이는 2000원짜리 된장찌개는 시원한 국물로 육회를 밥반찬 삼아 먹기에 그만이다.

외지에서 찾은 고객 중 열에 여덟아홉은 처음에는 육회에 손을 대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 맛만 보라는 권유에 못 이긴 척 젓가락을 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음~, 맛있다!" 라며 태도가 싹달라진다고 한다.

경주에서 육회 맛을 보러 달려 왔다는 정관용(50)-김민정씨(42)는 "경주도 한우가 유명하지만 육회는 이 집이 제일이다. 부드러운 육질에 많이 먹어도 물리지 않아 별미 생각이 나면 찾고 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장씨 할머니의 맛집 성공 비결은 다름 아닌 '자존심'이다. 최고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도 까탈스러울 정도로 닦달한다. 아침 6시부터 하루 조리 양을 정하고 고기와 야채, 멸치 등 식재료를 일일히 검수한다. 특히 상추도 다섯 번 이상을 씻어야 상에 올릴 수 있다.

"할마씨가 별나닥꼬들 합미더. 그러다 보이 같이 일하는 사람은 피곤하지예."

장씨 할머니는 반세기 동안 고깃집을 운영하며 세 곳의 직영점을 거느리는 등 많은 것을 일궜다. 영천 본점은 둘째 아들 편철권씨(49)가, 대구 죽전점-범어점은 셋째아들이 가업을 잇고 있다. 입소문이 나다 보니 아류도 많아져 얼마전부터는 아예 수십년 써 온 '영화식당' 대신 '편대장영화식당'이라고 간판을 바꿔 달고 상표등록도 마쳤다.

장옥주 할머니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5남매(아들 셋, 딸 둘)를 키우며 장사를 한다는 게 결코 녹록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그만큼 어려운 세월을 딛고 일어섰기에 이제는 어려운 이웃도 살필 줄 아는 여유도 갖게 됐다.

"밸 깃도 아인데 맛 있닥꼬들 찾아주시니 그 힘으로 자식들 키우고 이랬다 아입미꺼. 자식들한테 가르쳐 준 상술이라고 해봐야 '정직' 하나빼끼는 없십미더. 다리가 많이 아프지만 성할때 까지는 해야지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