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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희망의 사자성어 화이부동(和而不同)

몽블랑* 2013. 10. 1. 08:30


2009년 희망의 사자성어 화이부동(和而不同) 

포용과 조화의 철학으로 경제 난국 극복을...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와 함께 선정하고 있는 희망의 사자성어에 올해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 선정됐다. <교수신문>이 지난해 12월 8일부터 16일까지 설문을 진행한 결과 응답자 180명 가운데 39%가 화이부동을 2009년 희망의 사자성어로 꼽았다.

화이부동은 공자(孔子)가 <논어(論語)> 자로(子路)편에서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하다고 말한 데서 비롯된 사자성어다. 이후 평화와 공존을 강조하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다.

희망의 사자성어로 화이부동을 추천한 윤재민 고려대 교수(한문학)는

군자들의 사귐은 서로 진심으로 어울려 조화롭지만 그렇다고 의리를 굽혀서까지 모든 견해에 같게 되기를 구하지는 않는 데 반해,

소인배들의 사귐은 이해가 같다면 의리를 굽혀서까지 같게 되기를 구하지만 서로 진심으로 어울려 조화롭지는 못하다고 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윤 교수는 지난해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불화(不和)가 많은 한 해였는데 어려움이 클수록 덧셈 정치를 해야 한다면서 이는 정치, 경제, 사회적 강자와 약자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에도 적용되는 것이라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응답자들도 새해에는 이념과 계층 간 갈등을 극복하고 화합하자는 의미에서 화이부동을 선정했다. 송순재 감리교신학대 교수(교육학)는 우리 사회의 진정한 발전은 서로 경청하고 협력하는 것이라 면서 현재 첨예화된 계층 분화과정과 경쟁 이데올로기, 냉전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정신 이라면서 화이부동을 뽑았다.

배윤기 부산대 교수(영문학)교수도 차이를 서로 존중할 수 있는 인식과 태도가 정착돼야 지금보다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특히 경제난국을 극복하는 마음가짐으로 화이부동이 적절하다는 응답이 많았다. 정헌석 성신여대 교수(경영학)는 기존의 지역 간 갈등으로부터 이념, 남북 갈등이 극한에 이르렀고 계층 간 갈등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면서 현재 경제 위기를 돌파하는 길은 모두가 힘 을 모으는 방법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장수가 모든 군사와 고락을 함께 한다는 의미의 단투천(簞投川)이 19%, 쓸 만한 사람을 쓰고 공경할 만한 사람을 공경한다는 용용지지(庸庸祗祗)가 17%, 깊은 못에 임하듯이, 얇은 얼음을 밟듯이 조심 하라는 뜻의 여리박빙(如履薄氷)이 14%, 천지는 영원하다는 천장지구(天長地久)가 7%로 나타났다.

화이부동(和而不同) - 다름을 인정하는 조화(調和)

조화는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나온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

공자(孔子)는 <논어(論語)> 자로(子路) 편에서,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하다라고 했다. 곧 군자들의 사귐은 서로 진심으로 어울려 조화롭지만 그렇다고 의리(義理)를 굽혀서까지 모든 견해에 같게 되기를 구하지는 않는 데 반해,

소인배들의 사귐은 이해(利害)가 같다면 의리를 굽혀서까지 같게 되기를 구하지만 서로 진심으로 어울려 조화롭지는 못하다고 한 것이다. 화(和)의 논리와 동(同)의 논리를 군자와 소인의 사귐에 빗대어서 잘 드러낸 말이다.

송나라 유학자인 주희(朱熹)는 <논어집주(論語集註)>에서, 화(和)를 어그러지고 비뚤어진 마음이 없는 것(無乖戾之心)으로, 그리고 동(同)을 아첨하고 비교하는 뜻이 있는 것(有阿比之意)으로 풀이했다. 그러나 조선후기의 실학자 정약용(丁若鏞)은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에서, <좌전(左傳)> 소공이십년(昭公二十年) 조에 나오는 안자(晏子)의 말을 인용해 이 화(和)와 동(同)의 의미를 풀이했다.

<좌전(左傳)>에 보이는 안자의 말은 이런 내용이다. 국에 비유하면, 화(和)는 물과 불 및 각종 음식 재료와 조미료가 적당하게 어우러져 맛을 내는 것이라면, 동(同)은 물에다 물을 타듯이 똑같은 재료들만으로 국을 만드는 것과 같다. 음악에 비유하면, 화(和)는 서로 다른 여러 음률이 화음을 이루는 것이라면, 동(同)은 단 하나의 음률만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것과 같다. 이 안자의 생각을 다시 풀이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곧 화(和)가 다른 것들의 조화라면, 동(同)은 다름이 없는 같음이라는 말이다. 주희의 풀이가 화(和)와 동(同)에 대한 일반적 이해를 잘 보여준다면, 정약용이 인정한 안자의 풀이는 화(和)와 동(同)에 대한 논리적인 근원적 통찰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화(和)의 논리는 여럿의 다양성을 인정해 그 여럿의 어울리기, 곧 자타(自他)의 공존을 강조한다. 반면에 동(同)의 논리는 여럿의 다양성을 인정하기보다 그 여럿의 같게 되기, 곧 타자(他者)의 자기화(自己化)를 강 조한다. 그렇다면 화(和)의 논리와 동(同)의 논리가 행복하게 결합된 화이동(和而同)하고 동이화(同而和)하는 경우는 어떤가. 이러한 경우는 있을 수도 없지만, 이러한 주장은 기실 동(同)의 논리의 치장이기 쉽다.

지난해는 참으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불화(不和)가 많은 한 해였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소중한 것이 다름을 인정하는 조화가 아닌가 한다. 정치의 경우, 정치는 모름지기 플러스(덧셈) 정치를 해야지 마이너스(뺄셈) 정치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경제적 강자와 약자, 사회적 강 자와 약자에게 뿐만 아니라 남북문제에도 두루 해당되는 일이기도 하다. /윤재민 고려대, 한문학 교수

출처 : 교수신문 날짜 : 2008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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