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춘화/호남지방(2013/03/30)
開心 / 조희룡
昨日不可 今日不可 (작일불가 금일불가)
謹擇開心吉日 (근택개심길일)
擬爲先生壽供 (의위선생수공)
一蘭一石 難於摘星 (일란일석 난어적성)
慘憺經營 從覺索然 (참담경영 종각색연)
雖未畵 猶畵耳 (수미화 유화이)
어제도 할 수 없었고 오늘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삼가 마음이 열리는 길한 날을 가려
선생의 축수를 위해 바칠까 합니다.
난초 하나 바위 하나가 별을 따기보다 어렵군요
참담하게 애를 써보았지만 허망함을 느낍니다.
비록 그리지 않았으나 그린 것이나 진배없을
따름입니다.
/趙熙龍(1789-1866)의 漢瓦軒題畵雜存
누군가
祝壽의 그림을 청해왔던 모양이다.
그리기는 해야겠는데 흥이 오르지 않는다.
공연히 먹을 갈아 붓을 끼적거려보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붓하고 종이만 있으면 저절로 글씨가 써지고
그림이 그려지는 줄 아는 사람들은 이 마음을 잘 모른다.
흥이
돋아 붓끝이 너울너울 춤을 추면 삽시간에 몇장이고 끝마칠
그림이, 몇날며칠을 끙끙대도 난초하나 바위하나 그릴 수가
없다. 오죽 괴로웠으면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고 했을까?
결국
그림 한 장 그리지 못했지만 나는 벌써 수십번도 더 그린 셈
이니 그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것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자료를 모으고 구상을 익히
는 동안은 아무리 컴퓨터 앞에 앉아봤자 소용없다. 딴일을
하면서도 머릿속 생각은 온통 그리로만 향해 있다.
그러다가
문득 마음이 환하게 열리면 컴퓨터의 속도가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의 신명을 따라잡지 못한다. 몇날 혹은 몇 달을 답답
하게 꽉 막혀 있던 생각의 봇물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자신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예술을 한다는 것
학문을 한다는 것
인생을 산다는 것은
그 짧은 격정의 순간을 위한 기다림이기도 하다.
/鄭珉의 죽비소리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