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비소리

開心

몽블랑* 2013. 10. 1. 14:39


보춘화/호남지방(2013/03/30)

開心 / 조희룡

昨日不可 今日不可 (작일불가 금일불가) 謹擇開心吉日 (근택개심길일) 擬爲先生壽供 (의위선생수공) 一蘭一石 難於摘星 (일란일석 난어적성) 慘憺經營 從覺索然 (참담경영 종각색연) 雖未畵 猶畵耳 (수미화 유화이)

어제도 할 수 없었고 오늘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삼가 마음이 열리는 길한 날을 가려 선생의 축수를 위해 바칠까 합니다. 난초 하나 바위 하나가 별을 따기보다 어렵군요 참담하게 애를 써보았지만 허망함을 느낍니다. 비록 그리지 않았으나 그린 것이나 진배없을 따름입니다. /趙熙龍(1789-1866)의 漢瓦軒題畵雜存

누군가 祝壽의 그림을 청해왔던 모양이다. 그리기는 해야겠는데 흥이 오르지 않는다. 공연히 먹을 갈아 붓을 끼적거려보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붓하고 종이만 있으면 저절로 글씨가 써지고 그림이 그려지는 줄 아는 사람들은 이 마음을 잘 모른다.

흥이 돋아 붓끝이 너울너울 춤을 추면 삽시간에 몇장이고 끝마칠 그림이, 몇날며칠을 끙끙대도 난초하나 바위하나 그릴 수가 없다. 오죽 괴로웠으면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고 했을까?

결국 그림 한 장 그리지 못했지만 나는 벌써 수십번도 더 그린 셈 이니 그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것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자료를 모으고 구상을 익히 는 동안은 아무리 컴퓨터 앞에 앉아봤자 소용없다. 딴일을 하면서도 머릿속 생각은 온통 그리로만 향해 있다.

그러다가 문득 마음이 환하게 열리면 컴퓨터의 속도가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의 신명을 따라잡지 못한다. 몇날 혹은 몇 달을 답답 하게 꽉 막혀 있던 생각의 봇물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자신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예술을 한다는 것 학문을 한다는 것 인생을 산다는 것은

그 짧은 격정의 순간을 위한 기다림이기도 하다. /鄭珉의 죽비소리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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