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題驛亭壁上(제역정벽상)/ 無名氏

몽블랑* 2013. 10. 1. 16:30

 題驛亭壁上(제역정벽상)/ 無名氏

衆鳥同枝宿 (중조동지숙) 天明各自飛 (천명각자비) 人生亦如此 (인생역여차) 何必淚沾衣 (하필루첨의)

뭇새들 한 가지서 잠을 자고는 날 밝자 제각금 날아가누나 인생도 또한 이와 같나니 어이해 눈물로 옷깃 적실까.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실려 전하는 무명씨의 작품이다. 역정(驛亭) 벽에 누군가 써둔 것을 보고 베껴 두었던 것이다. 나그네 길에서 이런저런 회포가 왜 없었으랴. 빈 벽을 보고 낙서처럼 누군가 써놓고 간 시가 또 다른 나그네의 눈에 띠어 이렇게 남았다. 추운 밤을 나려고 제멋대로 놀던 새들이 한 가지로 모여들어 서로 몸을 부비며 잠을 잤다. 날이 환히 밝자 새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각자 저 갈 데를 찾아 부산스레 떠난다.

시인은 새들이 올망졸망 앉아 자던 빈 가지가 아침에 텅 빈 것을 보았겠지. 한 세상 건너가는 일은 따지고 보면 새들이 나뭇가지에 깃털을 부비며 하루 밤을 지내고 아침이 되어 뿔뿔히 흩어지는 일과 다를 바가 없다. 야박하달 것도 없고, 서운할 것도 없다. 각처에서 온 나그네들이 여관방에 우루루 몰려와 하루밤을 자고, 새벽녘에 뿔뿔히 흩어지는 것과 무에 다른가. 시인은 이곳에서 누군가와 떨어지기 싫은 이별을 했던 모양이다. 잠깐 깃들어 쉬다가 떠나는 것이 인생이니 슬퍼할 것이 없다고는 했지만, 그는 정말로 슬펐던 것 같다. 천지는 만물이 깃드는 여인숙이다. 세월은 백대를 지나가는 과객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새가 아니니 훌쩍 떠난 가지 위에도 눈물이 남는다. 정(情)이 없이는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 /鄭珉의 한문학

'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를 살아도 기쁜 마음으로 사는 것이  (0) 2013.10.01
낮은 곳을 살아야  (0) 2013.10.01
詩의 마음  (0) 2013.10.01
春望賦  (0) 2013.10.01
言事  (0) 2013.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