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진詩 9편
(1) 하늘로 가려던 나무 / 이생진
나무가 겁없이 자란다.
겁없이 자라서 하늘로 가겠다한다.
하지만 하늘에 가서 무얼한다.
갑자기 허탈해진다.
일요일도 없는 하늘에 가서 무얼한다 .
나무는 그지점에서 방황하기 시작한다.
(2) 고백 / 이생진
이젠 잊읍시다
당신은 당신을 잊고
나는 나를 잊읍시다
당신은 내게 너무 많아서 탈
당신은 당신을 적게 하고
나는 나를 적게 합시다
당신은 너무 내게로 와서 탈
내가 너무 당신에게로 가서 탈
나는 나를 잊고
당신은 당신을 잊읍시다
(3) 유혹 / 이생진
神은 날 직선으로 유혹했지만
나는 항상 곡선으로 달아났다.
圓으로 둘러주는 사슬을
가슴으로 풀며
조금씩 생기는 자유는
혼자 쓰기도 모자라서
기다리며 살아왔다.
(4) 고독 / 이생진
나는
떼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5) 이해 / 이생진
성산포에서는
살림을 바다가 맡아서 한다
교육도
종교도
판단도
이해도
성산포에서는
바다의 횡포를 막는 일
그것으로 둑이 닳는다
(6) 섬마당의 아이들 / 이생진
바다가 앞뒤로 들어찬 섬마당에서
아이들은 즐겁다
복잡한 내일이 보이지 않아 오늘이 즐겁다
소나무는 크면서 물 건너 미래가 보이는데
아이들은 고개를 들어도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십 년 후엔 노인만 남을 것 같고
오십 년 후엔 소나무만 남을 것 같은 마을
지금 아이들에겐 그것이 보이지 않아 즐겁다
(7) 외로울 때 / 이생진
이 세상 모두 섬인 것을
천만이 모여 살아도
외로우면 섬인 것을
욕심에서
질투에서
시기에서
폭력에서
멀어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떠있는 섬
이럴 때 천만이 모여 살아도
천만이 모두 혼자인 것을
어찌 물에 뜬 솔밭만이 섬이냐
나도 외로우면 섬인 것을
(8) 취한 사람 / 이생진
취한 사람은
사랑이 보이는 사람
술에 취하건
사랑에 취하건
취한 사람은
제 세상이 보이는 사람
입으로는 이 세상다 버렸다고 하면서도
눈으로는 이 세상다 움켜쥔 사람
깨어나지 말아야지
술에 취한 사람은 술에서
사랑에 취한 사람은 사랑에서
깨어나지 말아야지
(9) 다시 나만 남았다 / 이생진
다시 나만 남았다
영혼을 쫓아다니느라 땀이 흘렀다
영혼을 쫓아다니는데 옷이 찢겼다
자꾸 외로워지는 산길 염소쯤이야 하고 쫓아갔는데
염소가 간 길은 없어지고 나만 남았다
곳곳에 나만 남았다
허수아비가 된 나도 있었고
돌무덤이 된 나도 있었고
나무뿌리로 박힌 나도 있었다
그때마다 내가 불쌍해서 울었다
내가 많아도 나는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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