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설신어

즐풍목우(櫛風沐雨)

몽블랑* 2013. 10. 1. 11:33

즐풍목우(櫛風沐雨)/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우임금이 치수할 때, 강물과 하천을 소통시키느라 손수 삼태기를 들고 삽을 잡았다. 일신의 안위를 잊고 천하를 위해 온몸을 바쳐 노고했다. 그 결과 장딴지에 살점이 안 보이고, 정강이에 털이 다 빠졌다. 바람으로 머리 빗고, 빗물로 목욕했다(櫛風沐雨). 그러니까 즐풍목우는 따로 머리 빗을 시간이 없어서 바람결에 머리를 빗고, 목욕할 짬이 안 나 비가 오면 그것으로 목욕을 대신했다는 얘기다.

묵자(墨子)는 "우임금은 위대한 성인인데도 천하 사람들을 위해 이처럼 자신의 육신을 수고롭게 했다"며 감동했다.

후세에 묵자를 추종하는 무리는 이 말을 깊이 새겼다. 우리도 남을 위해 우리의 육신을 아끼지 말자. 그들은 짐승 가죽이나 베로 옷을 해 입고, 나막신과 짚신만 신었다. 밤낮 쉬지 않고 일하면서 극한의 고통 속으로 자신들을 내몰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할 수 없다면 우임금의 도리가 아니다. 묵가(墨家)라고 일컬을 자격도 없다."

위정자가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야 즐풍목우의 각오라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개인이 남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을 들들 볶다 못해 남까지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며 괴롭히는 것은 문제다.

장자는 '천하편'에서 단언했다. "이것은 천하를 어지럽히는 윗길이고, 다스리는 데는 가장 아랫길이다."

묵자는 사치와 낭비를 줄이고, 규범으로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서로 나누며 싸우지 말 것을 주장했다. 그는 겉치레에 흐른 예악도 불필요하다고 보았다. 검소와 절용(節用)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이런 묵자의 가르침은 사치가 만연한 그 시대에 약이 되는 처방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따르려면 사람들은 기뻐도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슬퍼도 울 수가 없었다. 즐거워도 즐거운 내색을 하지 못했다. 사람이 죽으면 의식 없이 그냥 매장해버려야 했다. 처음 시작은 사람을 위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사람을 근심스럽게 하고, 슬프게 만들었다. 장자는 이야말로 성인의 도에서 멀어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처음 순수했던 뜻이 맹목적 추종과 교조적 해석을 거쳐 왜곡되고 극단화된다. 지금 세상에도 이런 일은 얼마나 많은가? /조선일보(2011/09/22자) 세설신어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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